왜 방송사들은 어려움에 직면했을까요?(4)

3. 방송사가 고객을 모른다는 문제의 확장

콘텐츠에 집중한다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

방송사가 고객을 모르고,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기도 어렵다는 것은 다른 다양한 문제들과 연관된다. 그중에서도 두 가지를 언급하고 싶다. 하나는 콘텐츠에 집중하기 쉽다는 것이다.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이 왜 문제냐고 생각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는 콘텐츠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편리하게 보고, 다른 사람들과 교감도 나누고 싶고, 내 의견도 표출하고 싶고, 드라마에 노출된 상품은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싶고 등등. 그런데 방송사는 이런 측면들에 대해 반응하기 어렵다.

2000년대 초반 웹을 통한 VOD 서비스를 통해서 드라마를 보던 것이 다양한 OTT 서비스를 통해서 보는 것으로 진화했다. 드라마를 보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예전부터 카페, 블로그의 영역이었고 요즘은 SNS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2000년대 접어들어 TV를 통한 T-커머스의 성장 가능성이 언급된 바 있었으나 아직은 본격적인 성장 가도에 접어들었다고 보기 어렵고, 그마저도 방송사는 숟가락을 얹기 쉽지 않은 상태다(주요한 T-커머스 업체는 통신사나 대형 유통회사의 관계회사이다). 더구나 검색, SNS, 커머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요 업체들은 이미 방송사보다 훨씬 더 커진 덩치를 가지고 있다.

방송사가 직접 서비스할 수 있는 영역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직접 서비스하려니 초기부터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콘텐츠에 집중한다. 하지만 새로운 콘텐츠는 항상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운도 따라야 한다. 콘텐츠(재미, 감동, 정보)에 다양한 가치를 연결할 수 있는데서 사업적 성과가 나오는 세상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되니 콘텐츠에 집중하는 셈이다.

문제는 방송사가 콘텐츠에만 집중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장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떤 드라마는 성공할 수 있지만, 어떤 드라마는 저조한 실적을 보일 수 있다. 매우 비싼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들의 경우도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다. 방송을 통해서(즉, 광고나 콘텐츠 판매를 통해서) 충분한 실적을 내기 힘들다면 관련되는 사업들을 통해서 성과를 내야 한다. 과거에는 광고나 다른 채널에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거나 권리를 확보하는 데 들어가는 돈을 회수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많은 돈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 되면 광고와 콘텐츠 재판매로 들어가는 돈을 회수하기 어려워진다. 광고와 콘텐츠 재판매 외에도 다양한 사업적인 연결고리가 필요한 이유다.

스포츠 중계권을 보면…

최근 스포츠 중계권 가격을 보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국내 프로야구 중계권 가격은 매년 큰 폭으로 상승해 왔다. 국내 프로야구 10개팀이 하루에 5경기씩 치르므로 5개 방송사가 1경기씩 맡아 방송을 하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국내 스포츠 방송사는 지상파 3사 계열 스포츠 채널외 SPO TV가 방송하고 있을 뿐이다(몇몇 중소형 스포츠 채널이 존재하지만 프로야구 중계권을 사거나 현장에서 경기 중계 제작을 감당할 만한 채널이 아니다. CJ ENM이 2022년 스포츠 채널을 런칭했으나, 시점상 프로야구 중계권은 구매하지 않았다).

유력한 스포츠 채널중 하나인 jtbc스포츠 채널은 프로야구 중계권을 구매하지 않았다. 중요한 이유는 높아진 중계권 대가를 광고 수입으로 메꾸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다. 결과적으로 하루 5경기중 3경기는 지상파 계열 스포츠 채널이 방송하고 나머지 2경기는 SPO TV의 2개 채널에서 방송하고 있다. 프로야구 관련 사업들(의류, 용품, 게임 등)이 활성화되어 있는 상황이라면 KBO든 방송사든 중계권 가격에 목을 매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물론, 이것은 방송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비슷한 상황은 축구, 배구, 농구, 골프 등 스포츠 종목들의 공통적인 문제이다. 즉, 활성화된 사업이 받쳐주지 못한 상황에서 중계권(콘텐츠 판매)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방송사가 콘텐츠에 집중하다 보면 EPL(English Premier League) 중계권 같이 높은 가격만 지불하고 별다른 사업적 성과 없이 적자만 보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2018년 SBS 스포츠 채널은 누적되는 적자 감당이 힘들어 EPL 중계를 포기했다).

비용에 민감해 지는 문제

또다른 문제는 비용에 민감해 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어떤 기업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려울수록 R&D에 투자를 늘려 새로운 기술이나 상품을 개발하는 것, 새로운 상품에 명운을 걸고 마케팅 자원을 집중 하는 것, 신사업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접근하는 것, 상품 제조 과정을 혁신하여 생산 비용을 절감하는 것, 유통 과정을 혁신하여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바꿔보는 것, 인원을 감축하여 고정비 부담을 줄이는 것 등이다.

이것들중 방송사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된다. 오히려 거꾸로인 경우도 있다. 방송사의 콘텐츠 제작 및 조달 비용은 계속 상승해 왔다. 출연료, 작가료, 연출료가 상승하니 드라마의 회당 가격이 올라간다. 방송사가 의지를 갖고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콘텐츠의 유통 경로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직접 할 수 있는 부분이 제한된다.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도 잘 될 경우 반짝 실적을 만들 뿐 구조를 바꾸거나 체질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들은 어려움에 봉착한 방송사들이 비용을 절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도록 한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드라마 방송 시간대를 축소하고, 예능 프로그램도 돈이 적게 들어가는 관찰형, 토크형으로 제작한다. 문제는 이렇게 비용을 줄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와 비용을 줄이는 것이 단기적으로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느냐다.

방송사에게 고정비라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면

비용이라는 측면에서 방송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 가상의 공장을 상정해 보자. 이 공장은 생산시설을 돌리지 않아도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서 100원의 비용이 든다(고정비용). 상품을 만들기 위해서 추가로 100원을 투입하면(생산원가), 150원을 벌어서(매출액) 50원을 남긴다(매출이익). 남은 50원으로 고정비용 100원을 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50원의 적자를 본다(영업적자). 만약 상품을 200원 팔아서 100원을 남기면 고정비용을 충당하고 적자를 면하게 된다. 하지만 200원으로 팔기 어려운 상황이면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 해결책은 두 가지다. 많이 팔아서 매출액을 늘려 매출 이익 규모를 키우거나, 고정비용을 줄여서 기본적인 부담을 줄이거나.

방송사의 경우로 돌아와 보자. 방송사는 단기간에 매출을 급격하게 늘리기 어렵다(히트 드라마가 나오면 광고나 콘텐츠 판매 매출이 급상승하는 경우가 있으나, 1년 단위로 보면 지속적으로 매출액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광고 매출이 정체되고 콘텐츠 판매 매출도 단기간에 급성장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본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고정비 수준이 문제가 된다. 현재 상황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50원을 벌기 쉽지 않은데, 기본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고정비 수준이 100원인 것이다. 제작비가 상승해서 드라마 한 편에 몇 억씩 투입해야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 보다는 ‘그 정도 금액을 투입해서 어렵사리 이익(정확히는 매출이익)을 내더라도 높은 고정비 부담 때문에 결국 번 돈이 없는’ 문제가 더 크다. 더구나 고정비는 임의로 줄이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다.

호텔은 보유 자산에 대한 고정비 부담이 크다. 예를 들어 객실 판매율이 50%를 밑돌면 고정비도 부담하기 어렵다. 어떤 이벤트가 발생해서 객실이 완판되면 급격히 실적이 좋아진다. 반면 코로나 같은 위기가 발생해 객실 판매율이 고정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떨어지면 곧바로 생존의 문제에 부딪힌다. 방송사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모든 시간대에 광고가 잘 붙거나 모든 시간대의 프로그램이 외부에 잘 팔리는 것은 모든 객실이 잘 팔리는 호텔의 상황과 비슷하다. 반대의 경우에는 고정비에 대한 부담이 두드러진다.

2021년 SBS는 1,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코로나로 인한 반사 이익도 있었고, ‘펜트 하우스‘ 드라마가 히트를 쳐서 광고 및 해외판매 실적이 좋았고, 드라마 방송 시간 축소와 제작비 절감을 해서 거둔 성과다. 이것은 단기적으로 객실 판매율이 상승한 것에 해당할까, 객실 판매율이 지속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에 해당할까. 전자에 가까울 것이다(2021년 하반기 SBS에서는 명예퇴직을 실시했다. 이것은 인건비 부담을 지속적으로 줄일 수 있는 ‘고정비 절감’에 해당할 것이다). 방송사가 고정비 부담(인력(제작, 보도, 편성, 송출 등), 장비, 건물 및 세트 등)을 그대로 둔 채 콘텐츠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는 것은 공장 운영에 대한 부담(고정비 부담)은 그대로 두고 돈을 적게 들여 생산한 신상품이 히트를 쳐서 상황이 호전되기를 바라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콘텐츠에 집중하고, 비용에 민감해진다고 해서 방송사의 지속적 생존을 보장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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