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방송이라는 서비스는 사라질 운명일까
2.1 전파(전염)의 방식
1854년 런던에서 콜레라가 유행했다. 존 스노라는 의사가 ‘감염지도’를 만들어서 동일한 식수원이 전염원이라는 것을 증명해냄으로써 그전까지 몰랐던 콜레라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동일 감염원’ 전파에 해당되는 전염병이다. 상한 음식을 먹어서 생기는 식중독도 마찬가지로 ‘동일 감염원’ 전파에 해당한다. 한편, 전세계적인 코로나19 사태는 ‘전달형 전파’에 해당하는 전염병이다. 많은 호흡기 전염병은 ‘전달형 전파’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콘텐츠는 어떤 방식으로 퍼지는 것일까. 트윗을 생각해 보자. 트윗은 공유 활동을 통해서 트윗 자체가 퍼진다. ‘전달형 전파’ 방식으로 퍼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트윗 1,000개당 1개 꼴로 100번 이상 공유되며, 이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전달형 전파’ 방식으로 퍼진다. ( <수학자가 알려주는 전염의 원리> 애덤 쿠차르스키 저). 즉, 100번 이상 공유되는 트윗도 한사람의 전파자에 의해 퍼지는 ‘동일 감염원’ 방식으로 퍼지고, 극소수만이 ‘전달형 전파’에 의해 퍼진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트윗은 전파되지 않으며, 전파 되더라도 몇 세대를 거쳐 전파가 확산되기 전에 사그라지는 것이다. 트윗은 ‘동일 감염원’ 방식과 ‘전달형 전파’의 사이 어딘가의 방식으로 퍼진다.
2.2 복합감염
다른 차원의 전파 방식을 보자. 전염병은 병원체와 접촉하면 걸리는 병이다. 단순하다. 콘텐츠는 어떨까. 다시 트윗을 보자. 트윗은 전염병과 다르다. 트윗을 본 사람이 무작정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내가 공유할 필요가 느껴질 때 공유한다. 대부분의 트윗은 한 번 보고 지나친다. 공유가 되더라도 몇 세대에 걸쳐 계속 전파되는 경우는 극소수다. 이것은 단순 감염과는 다르다. 드라마나 영화 같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봐야 하는 콘텐츠의 경우는 어떨까. 누군가 한명이 ‘볼만하다’고 언급한 것을 접했다고 무작정 찾아보지는 않을 것이다. 친구들중 몇 명이 언급한 것을 들었거나, SNS에서 여러 사람들이 우호적인 후기를 올린 것을 본 다음에야 콘텐츠를 볼지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관심없는 유형의 콘텐츠라면 여러 번에 걸쳐 권유를 접했더라도 쉽게 콘텐츠를 볼 생각은 들지 않을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복합 감염’이라 칭한다.
단순 감염과 복합 감염의 가장 큰 차이는 ‘저항’ 개념에 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 혁신에 반응하는 것, 신제품을 구매하는 것 등등은 단순 감염이 아니라 복합 감염 방식에 의해 퍼진다. 이것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어떤 기업에서 혁신을 추진하는 상황을 상정해보자. 경영진에서 혁신안을 만들어서 구성원들에게 전달하면 구성원들은 마치 전염병에 감염되듯이 자신들의 과거 행동을 혁신안에 맞춰 변경하는가? 아닐 것이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구성원들은 혁신안에 대해 저항할 수도 있다. 변화에 따른 귀찮음이나 새로운 규칙 등이 생소해서 행동으로 옮기길 거부할 수도 있다. 행동을 수반하는 혁신은 단순히 전염병처럼 퍼지지 않는다. 혁신을 퍼뜨리고 정착시키기 위해선 다른 차원의 노력과 접근이 필요하다. 정치적인 신념은 어떤가. 좌파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우파적인 ‘시장 만능론’을 설파한들 한번 듣고 그 사람의 정치적 신념이 바뀔 수 있겠는가?
2.3 ‘저항’의 요인
데이먼 센톨라는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 혁신에 대한 ‘저항’의 요인을 4가지로 제시했다.
– 협응 : 어떤 혁신은 사람들이 그것을 함께 사용할 때에만 매력적이다. – 신뢰성 : 어떤 혁신은 그 효과나 안전성을 의심 받는다. – 정당성 : 어떤 혁신은 채택되기 전에 사회적 승인을 요구한다. 장애물은 창피를 당하거나 평판에 먹칠을 할 위험이다. – 열광 : 어떤 혁신과 행동은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벅찬 감정적 에너지를 받을 때에만 매력적이다.
콘텐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 주위 사람들 아무도 관심 없는 콘텐츠를 보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보는 콘텐츠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클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은 들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 다수가 인정한 콘텐츠라면 나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내가 콘텐츠를 보고 벅찬 감동을 느꼈다면 다른 사람에게 권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저항’의 크기가 커질수록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콘텐츠를 봐야겠다는 의지는 약해진다.
‘저항’의 존재로 인해서 복합 감염은 단순 감염과는 다른 경로를 거쳐 퍼진다. 콘텐츠의 전파가 복합 감염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한번의 접촉으로 콘텐츠의 전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순한 뉴스나 트윗 같은 경우 단순 감염과 비슷한 경로를 거쳐 퍼질 수 있으나, 드라마와 영화 같은 형태의 콘텐츠는 한 번의 접촉으로 퍼지길 기대하기 어렵다. 한 번의 접촉으로는 복합 감염 경로에 존재하는 ‘저항’의 벽을 뚫을 수없는 것이다. 따라서 복합 감염은 단순 감염과 다른 전염 경로를 거친다.
전염병은 병원체를 옮길 수 있는 접촉 자체가 중요하다. 한 사람이 수퍼 전파자가 될 수 있다. ‘작은 세상 네트워크'(던컨 와츠와 스티븐 스트로가츠가 1998년 발표한 네트워크 구조. 케빈 베이컨의 6단계 원리도 작은 세상 네트워크 구조에 의해 가능하다) 구조에 따라 네트워크 전체로 급속하게 퍼질 수도 있다. 멀리 떨어진 세계와 연결된 하나의 연결고리가 전파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콘텐츠가 퍼지는 것은 어떨까. 약한 연결고리만으로는 콘텐츠의 소비를 촉발하기 쉽지 않다. 약한 연결고리 하나만으로는 ‘저항’을 통과할 수 없기에 다수의 접촉이 필요하다. ‘저항’의 개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콘텐츠의 전파를 촉발할만한 요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처음부터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콘텐츠 소비를 촉발할만한 메시지를 내보내야 한다. 사람들이 다수의 접촉에 노출될 수 있게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2.4 콘텐츠의 전파 방식은
정리해 보자. 콘텐츠의 전파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콘텐츠의 전파는 ‘동일 감염원’ 방식과 ‘전달형 감염’ 방식이 혼합된 방식으로 퍼진다. 어떤 사업자가 서비스하는 (오리지널)콘텐츠를 소비하려면 그 서비스에 접촉해야 한다. 그 서비스가 ‘동일 감염원’의 역할을 한다. 한편, (오리지널)콘텐츠를 소비하는데 관련뉴스, 입소문, 후기, 하이라이트 등등이 네트워크상에서 전달되면서 사람들의 콘텐츠 소비를 유도하는 다수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전달형 전파’의 모습도 띄게 된다.
둘째로는 콘텐츠의 전파는 ‘저항’의 존재로 인해 단순감염과는 다른 방식(복합감염)으로 퍼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복합감염에서는 약한 연결고리 하나보다는 ‘연결 다발’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콘텐츠를 볼지 여부를 결정하는데 한번의 접촉이 아니라 다수의 접촉이 되도록 하려면 그 사람이 속한 커뮤니티(구성원들과 이미 친밀한 관계로 구성되어 있는 클러스터)를 공략하는 것이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그다지 가깝지 않은 페이스북 친구가 한번 드라마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는 것보다는 또래 집단 내 친구들 다수가 얘기하는 걸 들었을 때 ‘저항’을 넘어 동일 감염원 역할을 하는 서비스에 들어가서 (오리지널)콘텐츠를 볼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는가.
콘텐츠의 전파 방식을 생각해 보면 앞으로도 ‘방송’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전파하는 동일 감염원 역할은 글로벌 OTT 등 대체할 수 있는 서비스들의 존재로 정체될 것이다. 반면, 초기에 충분한 ‘연결 다발’을 만들어 내기는 어려운 콘텐츠들은 충분한 ‘연결 다발’을 만들어 내기 위해 ‘방송’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OTT 사업자들은 전세계에 걸쳐 많은 사용자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OTT에서 콘텐츠를 공개하는 것은 ‘방송’에 다름아닌 효과를 낸다. 전세계에 걸쳐 ‘동일 감염원’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일단 초기 소비자들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하면 큰 규모의 ‘연결 다발’을 여기저기서 만들어 낼 수 있다. ‘연결 다발’을 접한 사람들은 서비스에 접속해 (오리지널)콘텐츠를 소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로컬 OTT의 경우 수백만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지만, 일부만이 콘텐츠를 시청하기 때문에(모수가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자체적으로는 ‘연결 다발’을 충분히 만들어내기 어렵다. 콘텐츠가 네트워크 상에서 널리 퍼지기를 원한다면 한 번 이상 다수의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연결 다발’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이런 것을 ‘방송 이벤트’ 효과라고 부른다. ‘방송’은 로컬 시장에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연결다발’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