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편 이야기의 내용
장자에 ‘윤편 이야기’가 있다. 수레 바퀴 깎는 것을 수십년간 업으로 삼아온 윤편과 환공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이렇다. 누각 위에서 책을 보고 있는 환공에게 윤편은 책을 지은 옛사람들은 지금 살아있느냐고 묻는다. 환공은 옛 성현들은 지금 죽고 없다고 한다. 그러자, 윤편은 지금 공이 보고 있는 책의 이야기는 죽은 사람들의 찌꺼기가 아니냐고 말한다. 환공은 윤편에게 그렇게 말한 합당한 이유를 대라고 한다. 윤편은 자신의 수레 바퀴 깎는 이야기를 한다. 끌로 수레 바퀴를 깎을 때 너무 느리면 끌이 헛돌고, 너무 빠르면 나무에 박히기 때문에 적당한 힘과 속도로 바퀴를 깎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입이 있어도 자식에게 말하여 물려줄 수 없으니, 자신이 수십년간 바퀴를 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 없는 옛사람은 이미 자신이 전할 수 없는 이야기와 함께 죽었으니, 옛사람의 책을 읽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를 읽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여기까지가 윤편이야기의 내용이다.
노하우와 지식
윤편 이야기는 주로 노하우와 지식을 대비하는 얘기로 회자된다. 경험에 의해 몸에 체화된 노하우는 ‘실전’에서 쓸모없는 지식보다 낫다는 취지일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많다. 환자를 상대하기에는 상담 사례가 풍부한 정신과 의사가 정신 분석학 연구에 집중해 온 의사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왕실 요리를 하는 데는, 왕실 식단의 변화 역사를 연구한 음식 연구가보다는 왕실 요리를 재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 온 요리사가 적합할 것이다.
윤편과 같이 자신의 몸에 노하우를 체화한 사람은 환공과 같은 귀족과 달리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몸을 써서 실력을 닦은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그동안 닦은 실력을 발휘해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의 실력과 노하우는 시간을 두고 쌓은 무형의 자산으로서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실력을 닦은 요리사는 초보 요리사보다 나을 것이고, 오랫 동안 쇠를 두드렸던 대장장이가 만드는 검이나 농기구는 경험이 일천한 대장장이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베테랑과의 일화
그렇다면, 이렇게 몸에 체화된 노하우가 항상 지식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얼마전 모 건설회사의 현장소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분과 AI를 포함한 IT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 이런 내용이 있었다. “안전관리에 대해 현장에서 AI를 활용하여 안전 관리 시스템을 모니터링 하는 등 안전관리 대책을 운영 중이라면, 안전사고가 났을 경우 사후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오히려 평소 경찰이나 고용노동부 담당자와 원활한 관계를 지속해 오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 안전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는 다각도의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사망 사고가 난 경우 중대재해법과 관련된 여러 가지 대처도 필요하게 된다. 유가족에 대한 충분한 지원과 사고 원인 규명, 책임자가 있다면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은 기본적으로 필요한 사안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중대재해법에 따른 최고경영진의 책임 문제와 관련한 대책도 필요하게 된다. 이때, 만약 회사에서 다양한 안전관리 시스템과 대책들을 운영하고 있었다면, 이에 따른 다양한 데이터를(AI를 활용하여) 수집하여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꼭 AI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수집된 데이터는 활용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수십년간 쌓아 온 노하우는 물론 중요하다. 어떤 활동에 있어서 노하우는 효과적이면서 효율적인 방법과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지식도 항상 정체되어 있는 ‘죽은’ 지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지식을 발판 삼아 새로운 차원의 지식이 생겨나고, 그 지식은 실제 활동에 적용됨으로써 노하우에 영향을 미친다. 지식과 노하우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다. 안전관리에 AI를 적용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자. 현재까지 안전관리를 위해서 현장 헬멧 착용 의무화부터 현장별 안전관리 책임자 지정까지 각종 안전장치와 시스템을 운영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AI라는 새로운 차원의 지식이 나타났다. AI가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가능성을 높일 수 있으며, 안전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도 사후 대처에 활용 가능성이 높다면 AI를 잘 활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필연적이다.
나의 문제 해결방안은 노하우인가 지식인가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 존재한다. 첫째는, 노하우에 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 새로운 차원의 노하우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는 내가 처한 문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쌓여 있는 경험(노하우)으로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일 경우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들이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에 능숙해질수록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비용은 커진다. 노하우(경험)을 발휘하여 빠른 해결책을 모색할지, 중장기적인 노력을 감수하더라도 새로운 지식을 접목하여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할지는 내가 처해 있는 문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쥐덫과 쥐약 이야기이다. 쥐덫 만드는 회사는 편리한 쥐덫을 만드는데만 신경쓰다 쥐약이 나와서 사람들이 쥐덫을 더이상 쓰지 않고 쥐약으로 옮겨가는 바람이 쥐덫 회사가 망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쥐덫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야 하는 문제인지, 새롭게 출현한 쥐약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문제인지는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사람들이 더욱 편리한 쥐덫을 원한다고 생각되면 더욱 편리한 쥐덫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잘 발휘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고, 쥐를 잡는 새로운 솔루션(쥐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노하우보다는 새로운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노하우와 지식의 결합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둘째는, 경험에 의해 쌓인 노하우가 새로운 지식과 결합될 때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며, 이것은 저항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조직 내에 전파하기 위한 노력이(‘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많은 것들) 기득권과 안주하는 마음 때문에 저항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축적된 노하우(이것을 다른 이름으로는 경험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는 그것이 잘 활용될 때는 ‘핵심 경쟁력’이지만, 혁신과 새로운 시도를 방해하는 쪽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면 ‘핵심 경직성’이 된다.
윤편도 수십년간 자신의 수레바퀴 깎는 노하우를 쌓아왔노라 말했다. 시간과 노력을 얼마나 들였겠는가. 그런데, 어떤 대장장이가 농기구만 쇠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둥근 수레바퀴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 보자. 윤편도 당혹스러울 것이다. 수십년간 쌓아온 노하우의 가치가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느껴질테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편이 자신의 노하우로 나무로 깎은 수레바퀴만 지속해서 만드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불리한 상황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다. 쇠를 이용하는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서 나무로 깎은 수레바퀴에 쇠를 덧대보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해서 사람들이 받아들일만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AI도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건설현장에서도 접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이라 볼 수 있다. 앞서 얘기했던 안전관리의 문제에 대해서는 단기적인 해결책을 AI도 제시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건설 현장에서 생산된 데이터를 가지고 AI를 학습시켜서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면 축적된 현장의 노하우와 향상된 기능의 AI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안전관리 측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원에서 생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