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간 드라마 성적을 보니
‘평균으로의 회귀’ 경향은 언뜻 들으면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미묘한 측면이 있다. 학교에서 주로 배운대로 생각하자면, 어떤 사건을 반복할 때 당연히 떠오르는 개념이 ‘평균’이다. 그런데, ‘평균’이 적용되는 사건들은 전제가 깔려있다. 바로 사건들이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독립적’이라는 것은 사건들간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표적으로 예를 드는 것이 주사위 던지기, 키 분포, 성적 분포 같은 것들이다. 주사위를 던질 때 앞서 던졌던 행위와 결과가 다음번 던질 때 행위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같은 반의 키를 잴 때 내 짝의 키는 나의 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성적도 마찬가지다.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나온 분포가 정규분포다.
반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건들은 (당연히 독립적인 사건들이 아니기 때문에)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다. 앞서 얘기한대로 이런 사건들의 규모의 분포는 멱함수 분포를 따른다. 정규분포에서는 평균이 중요하다. 표준편차의 3배를 넘어가면 사건의 확률은 극적으로 작아진다. 멱함수 분포는 다르다. 평균보다 3~4배 큰 사건은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평균보다 100배, 1,000배 큰 사건도 현실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확률을 가진다. 전국을 통틀어 3m가 넘어가는 키를 가진 사람이 나올 확률(정규분포다)은 ‘제로’라고 봐도 무방할만큼이지만, 전국에서 평균보다 100배 넘는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충분히 존재하고, 1,000배 넘는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의 존재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멱함수 분포다).
드라마와 영화의 시청율 분포는 어떨까. 2020년 기준 국내 박스오피스 순위 1위~500위까지 영화 관객수 순위의 분포는 거의 정확히 멱함수 분포다. 1,700만을 넘긴 ‘명량'(1위)부터 175만을 기록한 ‘내셔널 트레저 : 비밀의 책'(500위)까지 관객수 분포를 그려본 결과다. 500위에 해당하는 작품보다 거의 10배나 많은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2020년 6월 기준 국내 유튜브 채널별 구독자 분포도 마찬가지로 멱함수 분포를 보인다. 당시 1위인 ‘Big Hit Labels’ 구독자는 3,680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200위에 해당하는 채널의 구독자는 160만명이었다.
멱함수 분포를 보이는 사건들에서는 ‘평균’과 ‘표준편차’의 중요성이 떨어진다. 잔잔한 사건들이 벌어지다 한번에 커다란 사건이 벌어지면 그동안 있었던 ‘평균적’ 사건들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우도 관객수, 시청자수(시청율) 기준으로 보면 멱함수 분포에 가깝기 때문에 ‘평균’의 의미가 퇴색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멱함수 분포를 보이는 사건들에 독립적 사건들의 영향(무작위성, 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즉 영화와 드라마의 성적은 멱함수 분포를 보이지만,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들 중에 독립적 사건들도 있어 이것들이 복합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규분포의 성격을 함께 내재하고 있으며, 이것이 ‘평균으로의 회귀’ 경향이라 볼 수 있다.
드라마의 시청율을 흥행성적으로 보고, 최근 5년간(2017년~2021년) 몇몇 연기자가 출연한 드라마의 시청율을 조사해 봤다. 아래 표의 맨 위에 나오는 ‘드라마 연간 평균 시청율’은 5개 채널(KBS, MBC, SBS, tvN, jtbc)을 평균했으며, 50회 이상 일일 드라마와 10회 미만 짧은 드라마는 제외하였다.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 | ||
| 드라마 연간 평균 시청율(단위 : %) | 6.5 | 5.8 | 5.2 | 5.1 | 5.3 | |
| 연기자 | 드라마명 | |||||
| 지성 | 2017년 ‘피고인’ 평균과의 차이 | 21.7 15.2 | ||||
| 2018년 ‘아는 와이프’ 평균과의 차이 | 7.2 1.4 | |||||
| 2019년 ‘의사 요한’ 평균과의 차이 | 8.3 3.1 | |||||
| 2021년 ‘악마판사’ 평균과의 차이 | 6.1 0.8 | |||||
| 한소희 | 2020년 ‘부부의 세계’ 평균과의 차이 | 18.8 13.7 | ||||
| 2021년 ‘알고 있지만’ 평균과의 차이 | 1.5 -3.8 | |||||
| 박신혜 | 2018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평균과의 차이 | 8.4 2.6 | ||||
| 2021년 ‘시지프스 ; the myth’ 평균과의 차이 | 5.0 -0.3 | |||||
| 배수지 | 2017년 ‘당신이 잠든 사이에’ 평균과의 차이 | 8.1 1.6 | ||||
| 2019년 ‘배가본드’ 평균과의 차이 | 9.0 3.8 | |||||
| 2020년 ‘스타트업’ 평균과의 차이 | 4.6 -0.5 | |||||
| 송혜교 | 2018년 ‘남자친구’ 평균과의 차이 | 8.4 2.6 | ||||
| 2021년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평균과의 차이 | 6.0 0.7 | |||||
| 남궁민 | 2017년 ‘김과장’ 평균과의 차이 | 14.9 8.4 | ||||
| 2018년 ‘훈남정음’ 평균과의 차이 | 3.9 -1.9 | |||||
| 2019년 ‘닥터 프리즈너’ 평균과의 차이 | 12.7 7.5 | |||||
| 2020년 ‘낮과 밤’ 평균과의 차이 | 4.5 -0.6 | |||||
| 2021년 ‘검은태양’ 평균과의 차이 | 7.8 2.5 |
| (단위 : %)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 |
| 전체 드라마 평균 | 6.47 | 5.75 | 5.20 | 5.06 | 5.32 |
| KBS 평균 | 7.02 | 4.98 | 7.02 | 3.56 | 5.01 |
| MBC 평균 | 8.01 | 6.13 | 5.18 | 3.70 | 5.68 |
| SBS 평균 | 9.71 | 7.39 | 7.42 | 9.08 | 9.74 |
| tvN 평균 | 3.57 | 5.42 | 4.42 | 5.42 | 4.81 |
| jtbc 평균 | 3.77 | 4.83 | 3.68 | 4.83 | 2.73 |
수치를 놓고 보니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있다. 인기 있는 배우가 주연을 맡았다고 해서 어느 정도의 시청율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2017년 지성은 ‘피고인’에 출연하여 엄청난 시청율을 기록했고, 그해 SBS 연기대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 다음해인 2018년에 출연한 ‘아는 와이프’는 평균 시청율과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2019년 ‘의사 요한’에서는 평균보다 다소 높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2021년 ‘악마판사’에서는 다시 평균에 근접한 성적을 기록했다.
한소희의 경우는 더욱 두드러진다. 2020년 ‘부부의 세계‘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었고, 드라마도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시청율도 평균보다 매우 높은 차이를 기록하며 2020년 대박 드라마에 등극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해에 출연한 ‘알고 있지만’은 평균 시청율 1.5%를 기록하며 평균을 큰 폭으로 하회하였다. ‘알고 있지만’은 원작이 웹툰으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임을 감안하면 의외의 성적이라 할 수 있다. 박신혜, 배수지, 송혜교 등도 마찬가지다. 송혜교의 경우, 2018년 ‘남자친구’에 출연하였는데, 2016년 ‘태양의 후예’가 27.4%의 평균 시청율을 기록했고, 해외에서도 대박을 친 이후에 처음으로 출연한 드라마였기 때문에 관심을 끌었으나, 평균보다 약간 상회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2021년 출연한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시청자들로부터 아쉽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평균과 엇비슷한 시청율을 보였다.
남궁민의 경우를 보면, 2017년 ‘김과장’으로 높은 시청율을 기록하더니, 2018년 ‘훈남정음’에서는 평균 하회, 2019년 ‘닥터 프리즈너’에서는 준수한 성적, 2020년 ‘낮과밤’에서는 다시 평균 하회, 2021년 ‘검은 태양’에서는 평균 이상의 성적을 기록하면서 평균 위아래를 널뛰는듯한 모습을 보였다.
드라마의 흥행 성적에 남녀 주인공이 기여하는 바를 수치로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 스토리가 너무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럽거나, 기본적인 영상 품질이 받쳐주지 못할 경우 시청자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 조연들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서 드라마의 시청율이 올라가고 인기를 유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즉, 드라마의 성공이나 실패를 야기하는 요인들은 전부다 나열하기 힘들만큼 다양하다.
한국 드라마를 보는 일본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일본 시청자들은 출연 배우들의 외모와 액세서리, 패션 등 출연 배우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항목을 주요 시청 평가 이유로 제시하였다(일본 시청자의 한국 드라마 시청에 관한 연구 -한일 역사 인식에 따른 한국 드라마 시청 성과를 중심으로, 김미선, 유세경, 한국 콘텐츠 학회, 2014년). 이외에 문화적 요인(음식, 장소 등), 내용적 요인(재미, 공감 등), 기술적 요인(영상미, 표현력)을 제시하였다. 비록 항목들이 사전에 드라마를 시청하는 결정요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과 관련된 사항들(연기력, 외모, 패션)이 주요 관심사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는 어떤 배우가 출연하고 연기하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성적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배우의 ‘실력’에 해당한다. 반면, 위에서 봤듯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가 출연했다고 해서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 드라마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많은 요인들 중에서 무작위성, 운의 요인들도 상당히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건수가 거듭될수록 ‘평균으로의 회귀’ 쪽으로 작용한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다른 의문으로 연결된다. ‘평균으로의 회귀’ 현상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배우라도 신인 배우나 실력이 떨어지는 배우와 같이 ‘배우 전체의 성적 평균’으로 회귀한다는 것일까? 다들 평균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있다면 결국 실력의 차이는 없다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다. 야구 선수를 상정해 보자. 3할 타자가 있다(A라고 하자). 이 타자는 직전 한 시즌 통산 타율 3할을 기록하고 있다. 이번 시즌 들어서도 3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경기당 성적을 보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어떤 경기에서는 4타수 4안타를 기록했지만, 어떤 경기에선 무안타로 침묵한 경우도 있다. 최근 10경기는 불망망이를 휘둘러서 타율이 6할에 근접했다. 이전 10경기에서 1할대의 저조한 타율을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른 선수(B라고 하자)는 지난 시즌 2할대를 턱걸이로 기록했다. 2년전에도 2할 초반대를 기록했다. 수비능력을 인정받아 저조한 타율에도 불구하고 선발출전을 하고 있다. 이번 시즌 들어 타격 성적이 들쑥날쑥이다. 시즌 초반에는 3할에 육박하는 타율을 기록했지만, 시즌 중반이 가까워오자 무안타로 침묵하는 경기 수가 급증했다. A와 B는 경기가 지속될수록 ‘평균으로 회귀’ 경향을 보일 것이다. A는 3할에, B는 2할에 근접하는 성적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 ‘평균으로의 회귀’는 이와 같이 전체 선수의 평균(예를 들어, 2할5푼이라 하자)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확률분포에서의 평균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A는 자신의 당시 확률분포상 평균에 가까운 3할에 근접하는 것이고, B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분포상 평균에 가까운 2할로 근접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평균적인’ 실력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개개인의 확률분포는 동태적이다. 시시각각 변한다. 따라서 어떤 시기에 (잠재적인) 확률분포가 어느 방향으로 변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야구 선수 예를 보자. A가 3할대를 치는 것은 지난 시즌부터다. 그 이전에는 전체 평균인 2할5푼 수준이었는데, 지난 시즌부터 물오른 타격감을 보이고 있으며, 이번 시즌에도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A의 확률분포가 오른쪽으로(즉, 높은 평균을 보이는 분포로) 이동했음을 시사한다. 반면, B는 몇년전부터 타율이 조금씩 하향세를 보이더니 지난 시즌부터 2할대를 겨우 유지하는 모양새다. B는 확률분포가 좌측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A의 연봉은 앞으로 상승세를 보일 것이고, B는 반대의 케이스가 될 것이다.
A가 B보다 타석에서 안타를 뽑아낼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크듯, 분명히 실력있는 배우가 출연하는 경우 드라마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실력있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성공 확률분포와 신인이나 실력이 떨어지는 배우의 (잠재적인) 성공 확률분포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배우가 가지는 성공 확률분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는 야구와 다른 측면이 있다. 야구는 여러 번 타석에 들어서며 다량의 데이터를 내놓지만, 드라마와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 야구는 한 시즌에 많은 경기를 하기 때문에 한 경기의 드라마틱한 승리가 전체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다. 드라마와 영화는 한번의 드라마틱한 성공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드라마와 영화는 한번의 커다란 성공이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다(이것은 드라마와 영화가 ‘스토리텔링 함정’에 빠질 가능성, 즉 한번의 성공이나 실패가 다음 번에도 이어질 것이라 맹목적으로 기대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증폭한다).
한편,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는 양상도 자주 나타난다. 야구에서는 텍사스성 안타, 내야 안타 등 운이 작용하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지만, 타석 수가 많기 때문에 전체적인 선수의 성적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드라마와 영화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덩달아 많은 요인들이 성공에 일조한 것으로 비친다. 어떤 드라마에서 밀도 있는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속도감 있는 전개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게 되면, 이것이 작가의 필력 때문인지 연출자의 능력 덕분인지 주연 배우의 미친 연기 때문인지 모호한 경우가 생긴다. 이런 경우 배우에게 칭찬이 집중되는 경우도 발생하며 드라마가 성황리에 끝나게 되면 배우의 성공 확률분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유가 모호한데(또는 운이 많이 작용한 것인데) 사후에 성공요인으로 지목되면서 몸값이 올라가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평균으로의 회귀’는 이처럼 미묘한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분야에 따라 다른 양상과도 연결된다. 실력있는 배우를 캐스팅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스토리와 배우와의 적합성 등을 제외하고 본다면 배우의 ‘실력’은 그 시기에 배우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성공 확률분포’이다. 이 분포는 주관적인 판단이 작용할 수밖에 없고, 동태적으로 시시각각 변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참조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