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운일까 실력일까
콘텐츠의 흥행 성공은 ‘운’이 작용한 것일까? ‘실력’이 작용한 것일까? 영화나 드라마를 공개했을 때, 100% 운에 의해 성공이 결정된다면 콘텐츠의 흥행 성공은 주사위 던지기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반대로, 100% 실력이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면 콘텐츠의 흥행 성공은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연주와 비슷할 것이다. 콘텐츠의 흥행 성공에 ‘실력’이 작용하는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대본을 쓰는 작가의 능력이 다른 작가의 능력보다 뛰어날 수 있다면, 100%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무작위적인 요소보다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일한 논리로, 연출을 맡은 감독이 다른 감독보다 더 나은 영상을 만들 수 있다면, ‘실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출연자도 마찬가지다. 다른 배우보다 연기력이 뛰어나다면 ‘실력’의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광고/홍보 활동은 어떤가. 콘텐츠가 공개 되기 전에 유명 작가가 집필했다는 이유로 언론에 보도되면서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유명 배우가 몇년의 공백을 깨고 이번 작품에 출연하기로 했다고 기사화되고, 대중의 눈길을 끈다. 제작 발표회를 열고, 기자들에게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기사를 쓰도록 재료를 제공한다. 시사회를 열거나 방송 일정을 광고하여 임박한 공개 일정을 알린다……이러한 일련의 광고/홍보 활동은 콘텐츠의 흥행 성적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광고/홍보 활동을 일체 하지 않는 콘텐츠와 비교해 광고/홍보 활동에 많은 자원을 쏟아붓는 것은 콘텐츠의 흥행 성적에 차이가 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러한 모든 ‘실력’의 요소들은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조성진이나 키신처럼 실력이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독주회를 여는 것과 비슷한 효과라고나 할까.
‘운’의 측면을 보자.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과 관련된 스릴러물을 공개하는 시점에 코로나 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너무나 비슷한 묘사로 인해서 그 스릴러물은 엄청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 상황은 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주연 배우의 스캔들이 터져서 대중으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된다. 그 드라마는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다. 이러한 상황도(비록 그 배우의 스캔들 가능성이 ‘실력’의 일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흥행 성적에 운이 상당히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운’이냐 ‘실력’이냐는 명쾌하게 나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SNS나 유튜브에서 어떤 콘텐츠가 ‘밈’의 대상이 되면서 갑자기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면? 결과만 놓고 보면 운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SNS 담당자가 트렌드를 읽고 어떤 짤 영상을 꾸준히 SNS에 올린 것이 재료가 되서 이것이 ‘밈’을 촉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트렌드를 읽은 것이 오로지 ‘실력’인가? 꾸준히 SNS에 올리는 활동을 한 것이 ‘실력’인가? ‘밈’을 촉발한 것이 의도한 것이 아니었는데 발생한 것이라면 이것은 오로지 ‘운’의 결과인가? 드라마에 출연한 주연 배우가 들고 나온 명품 백이 주목을 받아서 매출 증가로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협찬해 준 명품업체는 주연 배우가 시청자의 관심을 끄는 ‘실력’에 베팅한 셈이 된다. 하지만, 그 드라마에서 열연을 펼친 조연들 때문에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온통 조연들한테 쏠리는 상황이 되어 기대만큼 매출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그 주연배우는 다음에 출연하는 드라마에서도 착용하는 가방이나 액세서리에 대해 주목을 끌만한 ‘실력’이 줄었다고 봐야 할까?
실력의 측면은 미묘한 구석이 있다. 어떤 드라마에서 실력이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작가와 집필 계약을 한 상황을 가정해 보자. 실력이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 있기 때문에 높은 개런티를 지불할 것이다. 작가는 본인의 작품에 어울리는 흥행 보증수표라 불리는 남녀 주인공의 캐스팅을 요구할 것이다. 당연히 감독도 그에 합당한 사람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돈이 많이 드는 해외 로케이션을 해야 되고, CG가 필요하다면 높은 수준을 요구할 것이며, 꾸려야 할 스탭진들의 숫자도 늘어날 것이다. 결과적으로 드라마에 투입되는 돈의 크기가 커진다. 드라마에 제작비를 투자하기로 한 방송사(혹은 OTT등)는 흥행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진다. 홍보 계획을 세운다. 시기에 맞춰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내외빈을 초청하여 제작발표회를 성황리에 개최하고, SNS 활동을 하는 인플루언서들에게 협력을 요청하고. 필사적으로 홍보, 마케팅 활동을 펼친다. 이러한 모든 활동들은 드라마가 성공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예측의 자기 충족적 측면이다.
10대부터 과음을 일삼는 아들을 둔 어머니를 생각해 보자. 어머니는 아들의 음주 습관을 고치기 위해 매일 정성껏 기도한다. 아들도 어머니의 기대를 알고 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반항심이나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머니의 기도는 아들이 음주 습관을 고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어머니의 기도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다. 우리가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자기충족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런 실력은 비싸다는 것이다. 그 실력을 구매한 사람은 큰 부담을 지게 된다. 그래서 큰 부담을 진 구매자는 성공을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된다. 그 결과 성적에 대한 자기충족적 측면이 강화된다.
‘실력’의 자기 충족적 측면까지 고려한다면, 콘텐츠의 흥행 성공 여부는 정확하게 ‘운’과 ‘실력’이 동일한 크기로 작용한다고 보기 어렵다. 아마도 ‘실력’이 ‘운’보다 조금이라도 더 크게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실력만이 흥행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다고 할 정도로 크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킹덤‘의 사례에서 보면, 갓을 포함해 출연자들이 쓰고 나온 다양한 조선시대 모자들이 예상치 않게 서양 시청자들에게 큰 관심을 일으켰다. 코로나 유행으로 극장 관객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개봉 일정을 뒤로 미루거나 아예 취소하고 OTT에서 공개될 수 밖에 없었던 많은 영화들의 사례는 어떤가. 사드 문제로 촉발된 한한령으로 중국 시장이 막혀 피해를 본 드라마들도 많이 있다. 흥행 성적에 입소문이 중요하다고들 얘기하는데, 실력이 뛰어난 마케터가 항상 좋은 의미의 입소문을 낸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요지는 이렇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터져서 흥행 성적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것은 운의 영역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생각보다 운의 요소는 실력의 요소 못지 않게 흥행 성적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운의 요소들은 어떤 사건이 주사위 던지기와 비슷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운의 요소들은 흥행 성적이 평균으로 회귀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매번 1이 나오거나 매번 6이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2번, 3번, 4번….횟수가 증가할수록 주사위의 숫자 평균은 3.5를 향해 간다. 흥행 성적에 운이 어느 정도 작용한다면, 누가 감독이건 어떤 배우가 출연했건 어떤 플랫폼에서 공개했던 ‘평균으로의 회귀’ 가능성이 상존한다(평균으로의 회귀와 관련해서 뒤에서 몇년간의 드라마 성적(시청율)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내가 타고난 자질이 있다거나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갖추게 되는 어떤 능력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한다면 그것을 ‘실력’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야구 선수는 시간을 들여 타격 연습을 하며 타격 실력을 기른다. 피아니스트는 매일 수시간씩 연습을 하여 자신의 실력을 가다듬는다. 실력을 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자면 실패의 확률을 줄이고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운도 어느 정도(혹은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행운)만이 성공으로 이끌어주지는 않는다. 운과 노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남긴 명언들이 대변한다(나는 행운을 굳게 믿는다. 내가 열심히 하면 할수록 행운이 더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토머스 제퍼슨), 근면은 행운의 어머니이다.(벤저민 프랭클린), 열심히 연습할수록 행운도 따라오는 법.(골프 챔피언 개리 플레이어)……). 개인의 차원뿐 아니라 집단의 일(사업)에서도 실력은 성공의 가능성을 높인다.
여러 사람과 다양한 자원들이 투입되는 드라마나 영화에 있어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들은 무엇이 있을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 현실감 있게 캐릭터를 구현해 내는 연기 실력, 아름다운 영상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 주어진 시간 내에 내용을 밀도 있게 배열하는 편집 능력 등등은 콘텐츠 자체와 직결되는 능력이다. 먹힐만한 이야기라고 판별할 수 있는 능력, 드라마로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을 조직화하는 능력, 제작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 조달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관리하는 능력,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적절하게 홍보하는 능력 등등은 사업으로서 드라마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이다.
이러한 실력의 요소들이 작용하고 결합하여 결과물로서 드라마가 만들어진다. 운이 일정 부분 작용한다 하더라도 실력은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일(또는 사업)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수많은 요인(실력)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실제로 향상시킬 수 있는 (실력)요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일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성공 요인을 전부 구비하고 일을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