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전략은 문제 인식과 상황 판단에서 출발
전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무엇’ 류의 대답을 많이 떠올린다. 전략 수립의 결과는 ‘방향 제시’와 ‘행동 계획’이다. 하지만 전략 수립의 출발은 ‘문제 인식’과 ‘상황 판단’이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확한 진단 없는 치료 계획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상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
주식시장을 상정해 보자. 국내외에서 주식 투자 자금이 밀려 들어오면 KOSPI가 상승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이른바 대세 상승장을 만든다. 대세 상승장에서는 주가 상승 종목이 하락 종목보다 많기 마련이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주식 시장을 보면 여러 차례의 등락 시기가 있었지만, 2020년 3월(코로나 사태로 KOSPI가 2020년 1월말 2,120 대에서 2020년 3월 20일 1,560 대까지 하락)부터 2021년 6월(KOSPI가 3,300 까지 상승)까지 가장 큰 규모의 대세 상승장을 형성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팬데믹을 맞아 각국이 돈을 풀었고, 방역 강화에 따라 비대면 기술 기업에 엄청난 투자 수요가 몰렸다. 이유를 대자면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더 있을 것이다. 이렇게 판 자체가 뜨고 있는 상황에서는 어떤 종목에 투자하더라도 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이번 경우 팬데믹으로 인한 직격탄을 맞은 호텔, 여행, 항공 등의 산업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시장에 돈이 충분히 풀려 있어 대세가 상승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러한 산업들도 회복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하락장에서는 어떤 종목에 투자하더라도 손실을 회피하기 어렵다. 2020년 2월부터 3월까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약 2달 동안의 기록적인 하락기(비록 장기간에 걸친 대세 하락기라고 보기 어렵다 하더라도)에는 주식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손실이라 할 정도였다.
실적이 상승하거나 하락하는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활황이고 수요가 폭발하면 기업 구성원들은 결과로서 성과급이나 인센티브를 향유한다. 시장에서 외면받고 사업이 삐걱거리면서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은 구성원들을 닦달하기 시작한다. 시장에서 선택받는 기업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탄 것이고, 시장에서 외면받는 기업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셈이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조금만 힘을 들여 계단을 올라가면 금방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가는 움직임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엄청나게 힘들 뿐만 아니라 금방 힘이 빠진다.
콘텐츠 시장의 상황은 어떨까
2022년 현재 콘텐츠 시장은 어떤 상황일까. 전세계적인 K-콘텐츠 열풍이 휩쓸고 있다. 국내 방송사, OTT 뿐만 아니라 글로벌 OTT들이 K-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엄청나게 늘린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방송일 기준 드라마 편수(4회 미만 단막극 제외, 나무위키 참조)는 아래와 같다.
| 2012년 : 77편 | 2013년 : 78편 | 2014년 : 81편 | 2015년 : 73편 | 2016년 : 81편 |
| 2019년 : 105편 | 2018년 : 106편 | 2019년 : 105편 | 2020년 : 89편 | 2021년 : 80편 |
위의 수치는 국내 방송 채널에서 방송된 드라마 편수(OTT 오리지널 편수 제외)이다. 2020년부터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방송 편수는 줄어들었으나, CJ 계열 채널(tvN, OCN 등) 및 종편 채널, 넷플릭스, WAVVE, 카카오 TV등 OTT의 오리지널 드라마 공개로 최근 10년간 드라마 제작 및 방송 편수는 꾸준히 증가했다(2019년부터 넷플릭스에 공급된 드라마 편수는 2019년 3편, 2020년 5편, 2021년 9편, 2022년 12편(예정), 제작 확정되었으나 공개일 미정 8편이다). 여기에 편당 제작비가 상승한 점을 고려하면 10년간 한국 드라마 시장은 엄청나게 커진 것을 알 수 있다. 글로벌 OTT들이 앞다퉈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투자할 것이라 밝히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상당 기간 한국 드라마와 영화 제작이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위상이 한단계 상승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드라마를 포함한 한국 콘텐츠의 시장 확대 양상은 앞으로도 얼마나 지속될까?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에서 공개된 드라마들의 엄청난 성공이 앞으로도 오랜 시간 지속될까? 최근 넷플릭스와 관련된 기사 한편이 눈길을 끈다(‘세 가지 악재 겹친 넷플릭스….하루 새 시총 49조 증발‘, 2022년 4월 21일, 한국경제신문.). 기사에서 2022년 1분기 유료 가입자 수가 11년만에 처음 감소했고, 이를 반영하여 넷플릭스 주가가 하루새 25% 이상 폭락했음을 전했다(4월 22일 기사를 보면, 4월 19일 2022년 1분기 유료 가입자 수가 11년만에 처음으로 감소한 소식이 전해지자 시간외 거래에서 25% 이상 폭락했고, 4월 20일 종가는 226달러 수준을 기록해 전체적으로 35% 폭락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OTT 및 콘텐츠 업종 주가가 모두 하락했다. 디즈니, 로쿠, 파라마운트, 워너미디어 디스커버리 등이 모두 한자릿수의 하락율을 기록했다).
넷플릭스 측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 시장 철수를 결정하면서 70만명의 유료 가입자를 잃은 것이 유료 가입자수 감소의 결정적인 이유라고 밝혔으나 시장에서는 성장동력이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으로 돌아섰다. 한번 주가가 하락하자 넷플릭스를 둘러싼 많은 부정적 요인들이 부각된다. 전세계적인 방역 완화로 OTT 서비스 소비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OTT 시장 포화로 OTT 업체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늘었으나, 순이익은 감소했다. 무임승차 고객(계정 공유 고객)이 전세계적으로 1억 가구로 추산된다. 광고를 삽입한 저가형 서비스를 출시하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계약이 만료되는 콘텐츠 업체들의 이탈로 콘텐츠 부실화가 진행될 것이다….. 이런 요인들이 상존해 왔지만 주가 폭락 사태와 맞물려 넷플릭스의 성장은 끝났다는 얘기로 합쳐져 시장에 퍼진다.
언젠가는 OTT 시장의 성장세는 끝날 것이다. 글로벌 OTT 시장의 치열한 경쟁은 승자와 패자로 나뉠 것이다. 현재의 OTT를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가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OTT 업체들의 실적이 하락세에 접어들고, 콘텐츠 투자 여력이 감소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때도 한국 콘텐츠, 한국 드라마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얘기하긴 힘들 것이다. 현재 한국 드라마에 대한 방송사들과 OTT 업체들의 러브콜을 보면 드라마 시장에서 한국 드라마에 대한 초과 수요가 존재하는 상태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는 좋은 원작을 찾고, 능력있는 감독과 연기자를 캐스팅하여 훌륭한 기획안을 만들면 제작 투자를 유치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일단 수요가 정체되고 시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어느새 어려운 상황이 닥친다. 수요가 정체되고 시장의 경쟁 구도도 안정적인 상황이라면 거대한 제작비를 들여야 하는 새로운 블록버스터 드라마 기획안은 외면당하기 십상일 것이다.
제대로 된 상황판단이 유효한 전략을 낳는다
내가 처한 상황을 먼저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제대로 된 상황판단이 유효한 전략을 낳는 법이다. 방송사나 OTT 업체 입장에서는 시장이 성장중이고 OTT 업체들간 경쟁이 치열할 때는 큰 제작비가 소요되더라도 소비자들의 눈을 확 끌어당길 수 있는 드라마에 대한 수요가 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 끼어들지 못하는 중소 OTT 업체들에게는 한편당 소규모 제작 투자로 특색 있는 장르(로맨스 코미디든, 공포 스릴러든, 저예산 독립 영화든)를 다수 제작하여 집중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유효한 방향일 수 있다. 시장이 정체될 조짐이 보인다면 콘텐츠 제작사 입장에서는 좋은 조건을 관철시키지 못하더라도 방송사나 OTT 업체와 장기 공급 계약을 추진하는 방법이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상황 판단에 따라 구사해야 하는 전략의 방향은 변한다. 대세 상승기에 실적을 올리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대세 하락기에 대세 상승기에나 어울릴 대안을 고집하는 것은 재앙으로 연결된다. 대세 상승기든 하락기든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콘텐츠만 좋으면 된다고, 콘텐츠만 잘 만들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