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방송사들은 어려움에 직면했을까요?(9)

8. 방송사는 다른 분야에서 사람을 뽑지 않는다

방송사 채용의 모습

지상파 방송사들(KBS, MBC, SBS)은 공통적으로 공개채용을 실시해 왔다. 방송사 실적 하락, 코로나 등의 이유로 최근 몇년간은 공채를 실시하지 않다 2021년 몇년만에 공채를 실시했다. 채용 규모는 퇴직인원을 채우는 규모보다 작다(전체 인력은 줄어들고 있다). 채용 분야는 예전과 대동소이하다. 기자, PD, 방송기술, 경영 등으로 분류해서 채용한다. 2021년 공채에서 MBC가 콘텐츠 전략 및 마케팅 부문을 따로 제시한 것 정도가 다른 점이다. 만약 방송사들이 기존에 해오던 사업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면 인력을 채용하는 데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변화가 감지될 것이다. 변화의 일단은 기존 채용 직군(PD, 기자, 방송기술, 행정)외에 웹/모바일, IT, 콘텐츠 비즈니스 등의 분야에서 다수의 인력을 채용하는지 여부에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야의 인력들은 방송사에서 직접 채용하지 않고 계열사에서 채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가지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방송사가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사업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방송사 스스로가 직접 인력을 고용하지는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채널에 공급할 콘텐츠를 기획, 제작하는 일을 지속하며, 그것이 방송사 사업의 근간이다. 결과물로 나오는 콘텐츠를 각종 채널에 판매, 유통하는 것은 종속되는 기능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도 방송사에서 제작한 결과물을 토대로 사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런 결론이다. 유튜브에 맞춘 콘텐츠를 방송사에서 만들어내는 콘텐츠와 독립적으로 새롭게 제작하는 것을 방송사의 자회사에서 추진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성과가 나지 않으면 책임을 면치 못할테니 방송사에서 제작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사업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jtbc에서 ‘워크맨’과 ‘와썹맨’을 방송과 독립적으로 제작하여 성공했던 사례는 오히려 예외적이다. 이것을 넘어서 MCN 사업을 추진한다든지, 콘텐츠와 연계된 커머스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CJ 계열 방송사(CJ ENM)가 MCN 사업에 뛰어들고, MCN 사업에서 관계 맺은 인플루언서들과 커머스 사업을 추진하는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하는 것(CJ ENM은 DIA TV를 MCN 사업부로 운영하고 있고, 비디오 커머스 영상 전문 제작사인 다다 스튜디오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여기에 2020년 인플루언서 쇼핑몰을 운영하는 사업체인 터치 앤 바이(Touch & Buy Co. Ltd.)를 자회사로 새로 설립했다)과 같은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방송사들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만한 인력을 보유하지 못한 것도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단순히 자본력의 차이에 의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둘째는 인력 운영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어떤 신발 제조회사에서 비슷한 소재로 만들 수 있는 장갑 제조 사업을 신규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다고 해 보자. 신발 제조회사의 CEO(회사 소유주가 아닌 전문 경영인)는 신발 사업의 성과에 따라 자신의 위치가 결정된다. 신발 제조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면 장갑을 제조하는데 신발 제조 소재를 제공하는 것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 아마도 장갑 사업 책임자가 우여 곡절을 겪으며 사업을 안착시키면 자신의 공으로 포함시키면 되고, 장갑 사업이 실패하더라도 본인은 크게 영향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방송사가 자신의 콘텐츠를 기반으로 자회사가 성과를 내면 그 과실은 방송사가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자회사가 방송 콘텐츠와 무관하게 새로운 사업을 잘 하더라도 때가 되면 모회사인 방송사에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으며, 새로운 사업이 실패하면 담당자에게 책임을 물으면 될 것이라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모회사인 방송사 입장에서는 ‘꽃놀이패’를 쥐고 있는 셈이다. 기존의 사업과 영역이 다른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조직구조, 의사결정 체제, 그리고 자원의 배분(돈 뿐만 아니라 인력도 자원으로 본다)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만한 인력이 존재하더라도 방송사 경영진에게 의사결정을 받아야 하고, 운영상에서도 방송사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비단 방송사 뿐만 아니라 기존 사업의 경영진에게 신규 사업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매번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신규 사업은 배가 산으로 가는 상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방송사는 사업적인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이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 새로운 분야의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방송사 스스로는 새로운 분야의 인력을 채용하지 않고, 자회사들에게 떠넘기는 것처럼 보인다. 자회사들이 새로운 사업을 하려 해도 방송 콘텐츠 기반으로 쉽게 가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방송 콘텐츠와 별개로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하더라도 방송사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받아야 한다. 새로운 사업을 독립적으로 전개할만한 동력을 얻기 쉽지 않다. 조금 오래 되었지만 위의 내용과 관련된 경험을 얘기해 보겠다.

‘스토리웍스’의 기억

2009년경 나는 방송 계열사에서 ‘스토리웍스'(가칭)라는 사업을 기획하고 있었다. 그때는 지상파 3사가 아직 드라마를 위주로 한 콘텐츠에 대한 시장 지배가 일정 수준 유지되고 있었으나, 제작사들이 콘텐츠에 대한 일부 권리(주로 해외 배급 권리, 초창기의 인터넷 매체에 대한 배급 권리 등)를 방송사로부터 가져오는 상황이었다. 그 이전에 이미 지상파 방송사들은 드라마 제작사에게 제작비의 60~70%를 지급하고, 협찬/PPL 등으로 나머지 제작비를 제작사가 조달하도록 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한류가 시작되고 드라마 제작비가 급등하자 이를 감당할 여력이 부족한 방송사들은 투자를 통해서 체력을 기른 제작사들에게 콘텐츠에 대한 일부 권리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었다. 그 당시는 제작사가 드라마의 기획안(작가의 2~4회분 대본, 남여주인공에 대한 메인 캐스팅)을 방송사에 보내면, 방송사는 그것을 보고 편성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드라마 편성 흐름이었다.

방송사는 조금씩 허물어지는 콘텐츠에 대한 권리 울타리에 초조함을 느끼고 있었고, 급등하는 제작비도 허물어짐을 가속시키는 요인이었다. 방송사는 허물어지는 울타리를 고쳐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그래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기획 단계로 영역을 확장해서 콘텐츠에 대한 권리 확보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존재, 즉 스토리웍스를 생각하게 되었다. 스토리웍스의 사업 내용은 간단하다. 드라마를 집필할 수 있는 작가를 확보하여 먹힐만한 기획안을 다수 생산해내는 것이다.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확보한 기획안을 모두 드라마화할 수는 없으므로, 탈락한 기획안에 들어간 비용을 어떻게 벌충할 것이냐다. 방법은 생각하기 어렵지 않다. 채택된 기획안에 탈락한 기획안 비용을 얹어서 받거나, 드라마화 된 기획안에 대해 일정 수준의 수익을 나눠 받으면 된다. 둘째는, 확보한 기획안을 계열사인 방송사에서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렇지만, 방송사들은 타 방송사가 기획한 드라마를 편성하지 않는다. 이 문제는 사례가 필요하다. SBS 계열사가 기획했지만, MBC가 방송하는 드라마가 사례로 나오면 물꼬가 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스토리웍스의 당초 계획은 책임자를 외부에서 영입하고(방송사에 근무했던 경력이 없는 사람으로), 확보한 드라마 기획안은 계열 방송사만이 아니라 외부에도 제안하는 것이 골자였다. 계열 방송사에 완전히 속하지 않고, 자체적인 사업으로 자리매김 해야 가능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스토리웍스 법인 설립 계획을 보고한 후, 틀어지기 시작했다. 법인의 책임자는 계열 방송사에서 드라마 본부를 맡고 있는 사람이 겸임토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하더니, 법인의 역할도 계열 방송사 드라마 본부에 기획안을 제공하는 것으로 제한된 것이다. 그 결과 스토리웍스는 상당한 기간 동안 계열 방송사의 ‘2중대’ 역할 밖에 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스토리웍스는 방송사에 묶이게 되면서 ‘기존 사업’에 편입되어 ‘기존 사업’의 작동 논리에 지배받게 되면서 새로운 사업으로서의 의미는 없어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스토리 사업의 확장(예를 들어, 그 당시 초기 단계였던 웹 소설, 웹툰 등)은 원천적으로 시도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업은 구조적으로 ‘기존 사업’과 분리되어야 한다. 새로운 사업은 초기에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고, 실패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덩치 큰 ‘기존 사업’은 자신의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새로운 사업의 존재가 불편하다. 자신의 논리에 충실하도록 길들이려 한다. 이것은 새로운 사업이 기존의 역학관계에 휩쓸려 실패로 이르게 할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방송사는 우수한 드라마 기획안을 채택하고 방송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토리웍스는 좋은 스토리와 작가를 발굴해서 콘텐츠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스토리웍스는 좋은 스토리가 방송으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가 됐던 OTT가 됐던 콘텐츠가 소비자와 만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토리웍스는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소비자와 만나도록 하는 일종의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도 있었다. ‘기존 사업’의 논리에 편입되고, ‘기존 사업’ 내에서의 영향력 확대에만 관심이 있는 사내 정치가들에게 휘둘리면서 쪼그라든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2022년 현재 스토리웍스는 방송사의 드라마 제작본부와 합쳐지면서 독립하여 별도의 제작사가 되었고, OTT 열풍에 힘입어 대규모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다. 투자는 원활하게 유치가 되는지, 독립한 별도의 제작사는 어떻게 사업을 전개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당 기간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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