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방송사도 OTT 시장에 진출한지 오래됐지만…
넷플릭스의 OTT 전환과 지상파 방송사
넷플릭스는 1997년 설립 후 DVD 대여 사업을 했으나, 2007년 온라인 전환을 선언하고 OTT 서비스로 변신한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글로벌 OTT 서비스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떤 요소들이 넷플릭스의 성공에 영향을 미쳤을까. 스트리밍 서비스의 가능성을 일찍 알아보고 과감하게 전환한 의사결정, 사업의 전개에 발맞춘 듯 발전한 기술적 요소들, 초기에 확보 가능했던 콘텐츠 기업들의 콘텐츠 라인업, 과감한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자금 조달 능력, 월정액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의 전세계적 안착, 서비스의 안정적인 운영 능력 같은 것들이 성공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런 요소들이 콘텐츠에 투자하고 이에 따라 회원이 증가하는 선순환을 만들어 낸 것이다.
넷플릭스의 OTT 전환과 그리 멀지 않은 2011년 한국의 지상파 방송 3사도 OTT 서비스를 만들기로 하고 ‘pooq‘을 출범하였다((2019년 SK텔레콤의 ‘oksusu’서비스와 통합하여 ‘WAVVE’가 되었고, SKT가 최대주주가 된다. 앞으로 WAVVE라 칭한다). WAVVE는 2019년 SKT와 서비스 통합시까지 유료 회원 70만 수준을 기록한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국내 OTT 가입자 수는 넷플릭스가 383만5000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33.8%를 차지해 1위다(넷플릭스는 2016년 한국시장에 진출). 이어 WAVVE가 210만2000명, TVING이 178만1000명으로 각각 2, 3위에 올랐다(WAVVE는 2019년 SKT와 통합 후 oksusu 서비스와 통합, SKT의 마케팅 지원에 힘입어 유료 가입자 수 급증).
월간 순이용자 수(MAU) 기준으로는 차이가 더욱 벌어진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9월 ‘오징어게임’의 역대급 히트로 넷플릭스 월간 순이용자 수(MAU)는 약 1,229만명에 달했다. 국내 시장 점유율은 47%를 기록해 2~4위 업체인 웨이브(19%), 티빙(14%), 시즌(8%)을 모두 합쳐도 넷플릭스에 미치지 못한다(아주경제, 2021년 11월 5일). 가격도 WAVVE가 더 낮으니 매출 규모의 차이는 더욱 커질 것이다. 차이를 만들어 낸 원인을 생각해 보려면 WAVVE가 걸어온 궤적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WAVVE(pooq) 출범시 있었던 일
WAVVE 출범 당시 지상파 3사(KBS, MBC, SBS)는 이런 생각을 했다. “지상파 3사가 연합하여 OTT서비스에 콘텐츠를 제공하면, 당연히 OTT 시장 소비자들은 WAVVE에 몰릴 수밖에 없다.” 그 당시(2011년~2012년) 콘텐츠의 영향력은 지상파 3사 연합을 따라올 자가 없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방송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오던 CJ측에서 WAVVE에 자사 서비스인 TVing을 통합하자고 제안했으나 지상파 3사 연합은 거절했다(당시 지상파 3사는 CJ와 케이블 시장에서의 지상파 방송 재전송 문제로 분쟁이 있던 상태였다). 중요한 콘텐츠 제공처가 제외된 셈이다. 한편 구색을 맞추려면 다른 콘텐츠도 필요한데, 이것은 지상파 방송사의 계열 케이블 PP와 약간의 영화를 가미하면서 해결했다. ‘막강한’ 콘텐츠 라인업의 실체는 지상파 4사(EBS 포함)의 콘텐츠였던 것이다.
출범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막강한’ 방송사 콘텐츠의 영향력이 감소한다. 돈을 들여서 외부의 콘텐츠를 수급해야 할 필요성은 높아진다. 그런데 돈이 부족하다(WAVVE 출범시 자본금은 127억 수준이었다). 일시불로 지불할 여력이 안되니 ‘사후 정산’ 조건으로 콘텐츠를 사와야 한다. ‘사후 정산’의 결과는 보통 일시불 조건보다 열악하다. 인기 있는 콘텐츠들이 응할 이유가 없다. 풍부하게 콘텐츠를 수급하는 데 제한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오리지널 콘텐츠’와 관련된 문제도 있다. 사실 방송사 콘텐츠는 WAVVE에 있어서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아니다. 방송사에서 방송하고, 계열 케이블 PP에서도 방송하는 콘텐츠다. WAVVE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다. 넷플릭스에서 보는 방송 콘텐츠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와 함께 제공한다. 어디가 더 매력적인지는 자명하다.
서비스 형태도 넷플릭스와 WAVVE는 확연히 다른 궤적을 그려 왔다. WAVVE는 출범시부터 스트리밍, 다운로드, 실시간 방송 채널을 모두 제공했다(실시간 채널 서비스는 무료지만, 광고가 포함된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 OTT 소비자들이 모바일이나 PC로 방송을 시청하길 원하는 것일까? 방송사들은 모바일이나 PC로도 방송 서비스 시청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시간 방송 채널 서비스가 포함된 이유다(그것도 메인 서비스로). 하지만 OTT는 내가 보고 싶을 때 ‘콘텐츠 단위’로 선택해서 편리하게 볼 수 있는 서비스다. 실시간 방송 채널 서비스는 방송을 모바일 및 PC로 확장했을 뿐이다.
서비스 출범시부터 WAVVE는 OTT가 아니라 확장된 방송 서비스로, OTT의 논리가 아니라 방송의 논리가 지배하는 서비스가 된 것이다(2022년 현재 아직도 WAVVE 사용자의 3/4이 실시간 채널 서비스를 이용하는 무료 고객이다). 당위성을 확보하려면, 실시간 채널 서비스를 이용하는 무료 고객이 유료 고객화 될 가능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효과가 얼마나 있는지 밝혀진 바는 없다. 한편, 실시간 채널 서비스는 통신 요금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데이터 요금이 발생한다). 통신사를 바꾸기 어려운 Lock-in 효과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은 통신사의 논리다. 방송 확장 논리와 통신 사업의 논리가 OTT 서비스의 근간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라고나 할까.
운영과 관련된 문제도 상존해 왔다. 저작권 문제는 실시간 채널 서비스에 영향을 미친다. 저작권이 해결되지 않은 특정 드라마, 영화, 스포츠가 방송되는 시간에는 WAVVE를 통한 실시간 채널 서비스가 불가하다. 해당 시간대에는 채널이 블랙아웃 처리된다.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검색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소비자가 많다(예를 들어, 월정액에 포함된 영화인지, 건별 결제를 해야 하는 영화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심지어 영화를 분류해 놓은 카테고리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불만도 있다. 지상파 방송사 콘텐츠도 신작 위주로 운영되어 구작 콘텐츠가 원활하게 구비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화질 문제도 자주 언급된다. 경쟁 OTT에 비해 콘텐츠 화질이 낮다는 평가가 많았다. 사건 사고도 빈발했다. 2020년 7월 100분이 넘는 접속 장애가 발생했다. 2021년 1월 콘텐츠 오류 및 접속 장애가 장시간 지속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고객에 대한 가치 제안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실현하고 지속할 수 있는 ‘탁월한 운영’이 받쳐주지 못하면 사업이 잘 될리 없다.
잘되는 것보다 안되는 이유가 훨씬 많이 보인다
어떤 사업이 잘 되지 못하는 것에는 언급하는 사람의 숫자 만큼이나 다양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WAVVE는 출범시부터 안고 있는 콘텐츠 수급 문제, 방송 논리와 통신 논리가 OTT의 사업 근간을 흔드는 문제, 기술 및 운영상의 문제 등이 지속되어 왔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재원도 부족했다(출범시 초기 자본금 127억). SKT가 최대주주가 되면서 900억을 투자했고, 앞으로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에 수천억 이상을 쏟아 붇겠다고 하지만, 투자 규모로는 CJ가 운영하는 TVing에도 미치지 못한다. 2021년 2월 기준 WAVVE앱에 대한 평점은 2.2점까지 떨어졌다(iOS 사용자, 같은 시점 Android 사용자 평점은 3.3점). 특정한 콘텐츠를 시청하기 위해서 OTT 서비스를 구매하는 고객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한 고객은 해당 콘텐츠를 시청하고 나서 다른 볼만한 콘텐츠가 없으면 OTT 서비스를 유지할 이유가 사라진다. 게다가 콘텐츠 시청중 화질이 떨어지거나 끊김이 발생하는 등 운영상의 문제는 고객을 내쫓는 행위다. 고객의 입장에서 ‘콘텐츠 단위로’ 편리하게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OTT 서비스의 근간이 실시간 채널 서비스로 초점이 흐려지는 것은 고객의 필요보다 사업자의 논리가 앞선 사례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