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자체보다 연결관계가 중요하다(1)
편성, OTT, 본방사수…
예전에 TV로 어떤 콘텐츠를 보려는 사람들은 먼저 채널을 선택했었다. 저녁 8시 넘어 일일 드라마를 보려면 먼저 KBS1 채널을 틀어야 한다. 일일 드라마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9시 뉴스를 이어서 보게 된다. 채널을 틀어 놓게 되면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콘텐츠가 방송된다. 시청자 개개인의 시간에 맞출 수 없는 것이 지상파 채널이기에 방송사들은 일반적인 시청자의 생활 시간대와 선호도에 기반하여 콘텐츠를 편성한다. 프라임 시간대가 있었고, 시청율 높은 콘텐츠의 앞뒤로 배치된 콘텐츠도 영향을 받았다. 즉, 채널을 중심으로 콘텐츠간 연결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채널에서는 ‘편성’이 중요하다. 콘텐츠들을 어떤 시간대에 배치할 것인지, 광고는 얼만큼 붙일 것인지 등을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의 동향에 맞춰서 배치한다. 한편, 채널을 기반으로 한 편성은 기본적으로 ‘채널을 채우는 것’이므로 채널의 용량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루 24시간 분량이 최대이다. 따라서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즉 새롭게 조달한 콘텐츠 위주로 짜여지게 되고 인기가 좋더라도 한번 지나간 것은 다시 편성 대상이 되지 못한다. 과거 콘텐츠가 편성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 콘텐츠를 보려면 다른 서비스에 들어가야 한다. 반면, OTT 서비스는 전통적인 의미의 시계열적인 ‘편성’이 의미를 상실한다. 이용자들이 많이 볼 만한 콘텐츠들을 눈에 잘 띄게 배치하고, 이용자들의 성향에 맞게 다른 콘텐츠들을 배열하거나 추천해서 또다른 콘텐츠들을 이용하도록 유도한다. 여기서는 이용자의 성향이 중요하다. 이용자의 시간대별 동향은 중요도가 떨어진다.
매체와 서비스가 다양해졌다, 시간/공간의 제약이 없어졌다고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에 TV에서 그렇게 외치던 ‘본방사수’는 의미가 퇴색한다. 채널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단위로 선택할 수 있게 되고 시간적으로도 제약을 받지 않게 되니 굳이 시간 맞추는 불편을 감수하고 ‘본방사수’할 의지는 약해진다. ‘본방사수’가 퇴색되면 시청율이 하락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본방사수 전후에 다른 콘텐츠를 소비할 것이라는 기대도 사라진다. 채널내의 콘텐츠간 연결관계가 약화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채널 내에서 자신의 콘텐츠를 광고하는 ‘자체 광고’의 파급력도 줄게 된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압력이 증가한다. 최근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드라마가 성공할 경우 방송사가 스핀오프 콘텐츠를 만들어서 성공한 드라마의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시도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성공하자 ‘슬기로운 산촌생활’을 만들어 주요 출연진을 등장시켜 드라마의 성공을 이어가려는 사례가 있었고, MBC 사극 ‘옷소매 붉은 끝동’이 화제에 오르자 같은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인 ‘나혼자 산다’에 남자 주연배우를 출연시키는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콘텐츠간 새로운 방식의 연결 관계는 장점이 명확하다. 성공의 열매를 ‘저렴하게’ 이어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것은 OTT 서비스가 발빠르게 대응하기 어려운 새로운 종류의 연결 관계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결관계의 새로운 양상들
포털에서 제공하는 카페 서비스는 1999년부터 시작되었으며 2000년대 초반부터 드라마, 연예인에 대한 동호회 성격의 카페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때부터 콘텐츠와 SNS(카페를 SNS 서비스로 본다면)의 관계가 본격화됐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후에 다양한 SNS 서비스가 생겨나면서 드라마, 영화 등의 콘텐츠와의 관계도 다양한 차원으로 전개된다. 기본적으로 SNS 이용자와 콘텐츠가 맺는 관계는 ‘N차 콘텐츠'(오리지널 콘텐츠를 매개로 만들어 지는 파생 콘텐츠)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SNS 서비스의 특성에 따라 하이라이트 영상, 후기, 댓글, 별점, ‘좋아요’ 뿐만 아니라 패러디, 영상에 비춰진 상품 소개, 출연자의 다른 작품 소개, 감독의 필모그래피 등등 다양한 종류의 파생 콘텐츠가 만들어진다. ‘N차 콘텐츠’는 그 자체로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만만치 않지만, 오리지널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있어 재미와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하며, 사람들을 콘텐츠로 끌어들이는 유인 작용을 한다. 새로운 연결 관계가 강화되는 것이다. 즉, 오리지널 콘텐츠와 N차 콘텐츠와의 관계, N차 콘텐츠와 N차 콘텐츠 이용자와의 관계, 오리지널 콘텐츠 이용자와 N차 콘텐츠 이용자와의 관계 등 예전에 없는 관계가 생기고 이전에는 미약했던 관계가 강화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기존의 연결관계는 깨지고, 새로운 연결관계가 부상한다. 방송사, 서비스 제공자와 콘텐츠와의 연결 관계, 채널과 콘텐츠와의 연결 관계, 콘텐츠와 콘텐츠간 연결관계는 어떤 것은 약화되고 어떤 것은 강화되고 없던 것이 생겨나는 등 변화한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와 소비자와의 관계, 콘텐츠와 부가적으로 파생되는 N차 콘텐츠와의 관계 등은 점점 중요해진다. 관계가 변하면 행동도 그에 따라야 할 터. ‘내가 앞으로 어떤 방향을 잡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도 영향을 미친다. 해답은 각자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있다. ‘좋은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항상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살펴봤듯 어떤 콘텐츠가 성공하는데 콘텐츠 자체만이 성공요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과정, 콘텐츠가 유통되는 과정, 콘텐츠가 소비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연결관계가 콘텐츠의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좋은 콘텐츠’는 사람들을 모으고 시선을 붙잡는 방아쇠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 이상적인 연결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더구나 콘텐츠는 일시적이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자는 것은 다른 사람이 차용하고 모방하기 용이하다. 지속적인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 2021년 네이버와 카카오가 웹 소설, 웹툰 플랫폼 업체들을 다수 인수한 것도 웹 소설과 웹툰이 자체로 성장하는 사업인데다 드라마나 영화 등과의 관계가 날로 강화되는 것과 연관 있다(2021년 네이버는 문피아,왓패드 등 웹 소설 플랫폼, 카카오는 래디쉬미디어, 타파스 미디어, 우시아 월드 등 웹툰 및 웹 소설 플랫폼을 인수했다). 웹툰 한편이 드라마화 되어 성공한다면, 그것은 다음에도 다른 웹툰 작품이 드라마화 되어 성공한다는 것을 보장하지 못한다. 하지만, 웹툰이나 웹소설 플랫폼에 수많은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다면, 웹소설/웹툰과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연결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