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방송사들은 어려움에 직면했을까요?(8)

7. 방송사는 ‘미디어 기업’과 ‘방송기관’이 짬뽕되어 있다

‘미디어 기업’과 ‘방송기관’

여기서 말하는 ‘미디어 기업’은 콘텐츠를 기획/제작/유통하는 것을 주사업으로 하는 기업이고, ‘방송기관’은 정부로부터 일정 기간마다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각종 법률의 규제를 받는 대상으로서의 방송사를 말한다. ‘미디어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사업체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서 광고와 콘텐츠 판매 매출을 올리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반면, ‘방송기관’은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각종 규제의 대상이 된다. 우리 나라의 지상파 방송 규제는 방송사의 소유, 인허가(재허가 포함), 광고 규제, 편성 규제, 프로그램 내용 규제, 외주 관련 규제 등 지상파 방송사의 거의 모든 활동에 걸쳐 틀이 짜여 있다. 이러한 규제는 공영, 민영을 막론하고 지상파 방송사에게 거의 동일하게 적용된다. 공공성, 공익성을 요구하는 규제의 틀에다가 정부의 정파적 속성까지 규제를 운영하는데 반영되다보니 지상파 방송사는 사업체적 성격과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공공기관적 성격을 한몸에 가지게 되었다.

KBS 같은 ‘방송공사’는 법적으로 재원을 ‘수신료’로 충당받을 수 있으니(수신료의 적정성은 차치하고) ‘미디어 기업’으로서 수익성을 추구하는데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다른 지상파 방송사나 종합편성채널사업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나 종합편성채널사업자들은 ‘공익성’과 ‘수익성’을 조화롭게 양립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양쪽을 조화롭게 양립시켜야 한다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 또 있을까.

이익을 내고 있고, 공익성에 대한 특별한 문제제기가 없는 상황이라면 공익성과 수익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가 그렇듯이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면 잠재되어 있던 문제들이 튀어나온다. 공익성과 수익성을 조화롭게 양립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떤 측면에서는 서로 대치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보면, 공익성은 시장(고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고객의 신뢰’라는 인프라 같은 것이고, 수익성은 고객을 확보하고 상품을 제공함으로써 얻는 결과물과 같은 것이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두 개념이 조화롭게 양립하는 것이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일반 기업에서 마케팅 부서와 생산 부서가 대립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고객의 신뢰(공익성)’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신뢰를 잃으면 속된 말로 ‘한방에 훅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시장(고객) 확보’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돈도 못 벌면서 어떻게 살 수 있겠냐’고 주장한다.

처한 상황에 따라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들과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들을 선택하고 실행할 것이다. 어떤 조치들은 필수적인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것들은 일시적으로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수많은 의사결정들이 필요에 따라 행해지고 그 의사결정들의 결과들이 쌓여서 고객의 신뢰와 시장의 확보를 추구해 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업이 필요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모든 일을 기업에만 맡겨놓을 수는 없다. 안전, 환경, 소비자 보호, 노동 등의 측면에서는 기업에 일정 수준의 규칙을 따르라는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할 수 있다. 문제의 많은 부분은 여기서 발생한다. 어디까지 규제할 것인가. 공익성을 내세우며 규제가 강해진다는 것은 당위론과 도덕주의가 강해진다는 뜻이다. 모든 기업들이 마찬가지인 측면이 있지만 방송사는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사업 환경은 계속 안좋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돈을 벌되 착하게 벌어야 한다’는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로또는 어찌 되었는가

2000년대 초, 로또 열풍이 일었던 적이 있다. 어떤 때는 당첨금이 이월되어 계속 쌓이다 보니 1등 당첨금이 400억원을 훌쩍 넘긴 적도 있었다. 서민들이 매주 로또를 사면서 로또 판매금이 급증했고, 1등 당첨금도 계속 늘어갔다. ‘로또 광풍’이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전국민을 도박판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행심을 조장해서는 안된다는 규제 논리가 등장하고 로또는 한게임당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변경됐다. 1,000원으로 가격이 조정되니 당첨되는 확률이 높아져 당첨금이 이월되는 사례는 사라졌고, 당첨자가 많이 나오니 당첨금도 줄어들게 되었다. 로또 열풍은 식었다. 로또는 판매대금의 절반 가량이 각종 기금으로 걷히게 되고 이것을 재원으로 하는 여러 사업(공익 성격의 사업)들이 있는데, 여기에 충당되는 재원도 줄어들게 되었다. ‘도덕’이 등장해서 사업이 영향받은 사례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도덕’이 ‘옳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도덕’이 필요한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도덕’이 주장하는 강도도 다양할 수 있고, ‘도덕’이 주장하는대로 했지만 원치않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로또에 대해서 누군가 주장하길 로또는 도박판에 들어가는 티켓이 아니라, 서민들에게 일주일 동안 속되지만 희망을 주는 서비스라는 것이다. ‘도덕’이 주장해서 로또의 희망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방송사의 입장에서는 가장 첨예하게 공익성과 연관되어지는 뉴스 보도 기능을 분리하여 공익성을 담보하기 위한 독립성을 강화하고 콘텐츠 기업으로서 다른 부문의 사업성과 수익성을 추구하는 등의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방송사의 경영진 문제

방송사가 ‘기업’과 ‘기관’의 양면적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과 관련되는 또다른 중요한 문제가 경영진 문제이다. 방송사의 사장은 어떤 사람이 되는가. KBS, MBC와 같은 공영, 혹은 준공영 방송사의 사장은 자주 바뀐다. 그것도 정권의 향배에 크게 영향받는다. 정치로부터 방송의 독립을 주장하지만, 지상파 방송사 사장들의 임면에 정치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2000년 이후 선임되는 방송사 사장들은 거의 기자나 PD 출신들이었다(최근에는 정치권과 함께 방송사 노조가 사장 선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이후 KBS 사장은 10명째이고, MBC 사장은 13명째이다. 평균 임기가 2년 전후이다. 정치와 밀접하고, 자신의 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역대 사장들은 방송사의 논조를 정권에 맞춰 왔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방송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변화가 방송사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것과 이미 방송사들이 위기 국면에 들어선지 한참 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한다. 일반적인 기업이 만약 위기를 맞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해법이 있는지 모색하며, 적시에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할 것이다. 그것은 보통 혁신과 변화로 귀결된다. 정치와 밀접하고 자신의 위치가 불안정한 방송사 사장들과 가장 거리가 먼 주제가 아마도 ‘혁신과 변화’일 것이다. < 상식, 불변의 원칙 : 이병남, 김양우, 신규섭 저, 시공사, 2022 >에서 저자들은 혁신과 변화를 방해하는 주요사례중 첫번째로 ‘현재의 경영 성과를 엄정하게 검토할 동기가 없음’을 지적했다. 근본적인 재점검보다는 주어진 임기 안에서 개선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방송사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방송사 사장들(특히 지상파 방송사)은 방송사의 ‘공공적’ 성격을 내세우며 자신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법적/제도적 보장을 요구한다. 어물전이 마을 주민들로부터 외면 받으면서 장사가 잘 되지 않자 왜 마을 주민들로부터 외면받는지는 도외시한 채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장에게 마을 주민들에 대한 어물전의 존재는 필수적이라 주장하면서 마을 예산을 지원해달라는 꼴이다.

방송사 사장들의 관심이 변화와 혁신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동안 방송사가 기업으로서 추진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들은 그 동력을 받지 못했다. 정권이 바뀜에 따라 방송사의 지난 정권에서의 행적이 부각되며 이슈꺼리만 제공하고, 어쩌다 방송사 경영위기에 대한 진지한 얘기가 나오더라도 ‘방송 광고 규제 완화’, ‘방송 소유 규제 완화’, ‘시장 점유율 규제 완화’ 등 제도적 측면에서의 논의로 쏠린다. 시대에 맞춰 불필요한 규제는 손보는 것이 필요하다. 발목을 붙잡고 있던 규제가 풀린다면 분명 방송사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방송사가 ‘미디어 기업’인지, ‘방송기관’인지 불명확한 상태에서 계속 정치권과 줄이 닿아 있는 인사들이 사장으로 임명된다면, 규제 완화가 변화와 혁신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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